반응형

 

얼마 전 인터넷상에 Frequency, Function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가지고 공대생과 인문계 학생을 구분하는 유머가 게재되었다. 공대생이라면 “주파수”와 “함수”로 해석하고, 인문계 학생이라면 “빈번함”과 “기능”으로 해석한다는 재미있는 내용으로, 본 절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Chip에 관한 것이므로 혹시 얇고 부서지기 쉬운 과자가 연상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유머를 인용하였다.


이공계 학생이라면 누구나 진공관, 트랜지스터, 집적회로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을 것이지만 집적회로(IC), 즉 칩이 Jack St Clair Kilby(이하 Kilby)라는 사람에 의해 발명된 사실은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모르고 있다.
칩이 발명되기 전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전자제품 설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많은 트랜지스터를 연결하다보면 결함요소가 매우 증가한다는 “큰 수의 문제(Tyranny of numbers)”였다. 잭 킬비는 1958년 Texas Instruments사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Chip을 발명함으로써 증기기관에 의한 산업혁명 이후로 반도체에 의한 전자정보통신시대를 열었고, TI사에게는 향후 40년간 관련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굳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개인적으로는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Kilby의 TI사가 칩 관련 기술에 대해 처음부터 순탄한 출발을 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시대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Fairchild Semiconductor사의 Robert Norton Noyce(이하 Noyce) 박사에 의해 원리는 같으나 Process가 다른 발명이 먼저 특허로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발명의 아이디어는 Kilby 박사가 먼저이나, 개량된 즉 보다 “집적”이란 의미에 가까운 발명은 Noyce 박사에 의해 특허가 등록된 두 가지 사안에 대해 TI사와 Fairchild사는 60년대 말까지 10여 년간 Chip 특허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거쳐, 결국 Chip 특허에 대해 Kilby와 Noyce 공동 발명으로 합의하게 된다. 두 회사가 10여 년간 법적공방을 벌인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왜냐하면 Chip의 전세계 시장규모가 이미 오래전에 한국의 1년 예산을 훨씬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분쟁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본 절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은 특허분쟁의 기술적 원인이 아니라, 미국특허제도의 특징인 선발명주의에서의 아이디어노트 또는 연구노트와 미국 이외의 국가에 적용되는 선출원주의에서의 논문의 역할을 특허소유권과 관련지어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은 선발명주의 원칙으로 특허출원일보다 실제 발명일을 더 우선시한다. 즉 A라는 사람이 2004년 1월 특허출원하고, B라는 사람이 동일 기술로 2004년 5월 특허출원하였으나 B의 아이디어 노트 또는 연구노트에 2003년 6월 기술을 발명하였고, 입증할 수 있다면 B의 특허가 A의 특허 때문에 거절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출원주의를 취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A에게 특허권이 부여된다.


또한 선출원주의에서는 발명이 등록을 받기 위해서는 출원일 이전에 해당 발명과 관련된 기술자료가 세상에 공개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출원된 발명과 동일한 발명이나 기술내용이 출원일 이전에 제3자는 물론 자신에 의하여 공개되어도 신규성을 상실한 것을 판단되어 특허로 등록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만을 고수하다 보면 연구자들은 논문에 의한 발표 등을 꺼리게 되어 연구된 기술의 확산이 더뎌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특허법은 예외를 두어 논문 등의 간행물 발표에 의해 신규성을 상실한 발명이라 하더라도, 6개월의 기간 동안은 신규성을 상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신규성 의제” 제도를 두고 있다. 6개월 동안만 신규성 상실로 보지 않는 것이므로, 6개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리 선발명자라 하더라도 신규성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특허등록을 받을 수 없다.


즉, 6개월 이전의 논문자료는 선행기술자료로서 타인의 특허에 관한 무효소송의 근거자료가 될 수는 있으나, 논문 발표자가 논문일자를 근거로 발명 우선일자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국내 이공계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내용으로 대부분 논문이 학회지나, 논문집, 기타 인정된 자료집을 통해 발간될 경우 해당 논문의 효력을 과잉 신뢰하여 특허보다 항상 우선시된다고 믿고 있는 점이다.

 
정리해보면, 특정 논문이 발간된다는 것은 같은 기술의 특허를 타인이 소유하게 하지 못하는 견제책은 가능하나, 6개월 내에 특허를 출원하지 못할 경우 본인도 특허권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점은 상업성이 큰 기술의 경우 매우 중요한데, 핵심기술에 대하여 자칫 어느 누구도 특허권을 소유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앞선 예에서 Kilby와 Noyce가 논문만을 맹신하는 연구자로서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기술의 자유로운 사용으로 지금보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도 자유스러운 나머지 기술개발을 위축시켜 현재보다 낙후된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이 좀더 타당할 것이다.


하나의 가정을 더해본다면, 만일 Kilby 박사가 한국에 살았다면 어떤 결과였을까? Kilby 박사는 1958년 7월 24일 “한 조각의 실리콘 위에 저항, 커패시터, 트랜지스터, 다이오드를 함께 만들면 많은 전기 회로를 극도로 축소할 수 있다."고 연구 노트에 기록했고 다음 날 논문을 발표했다면, 특허출원은 1959년 2월 6일 출원하였으므로 논문발표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특허를 출원한 셈이다. Kilby 박사가 한국에 살았다면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선 이유에서 특허는 획득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만약 Kilby 박사가 미국 특허출원을 1958년 7월 30일에 했다면, 미국에서도 특허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미국 특허제도 하에서도 연구자들의 특허출원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당 특허 내용이 공개되어 1년이 지나면 신규성이 상실된 것으로 판단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가정에서 Kilby 박사의 미국출원은 논문발표일로부터 1년이 지난 다음이기 때문에, 자신의 논문에 의해 신규성을 상실하였다는 이유로 등록이 거절되었을 것이다.


시대의 위대한 발명은 발명자보다는 그 발명의 가치를 알아챈 또 다른 사람에 의해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발명자는 대부분 그 가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순히 현재 상태의 극복이나 해결을 위해 발명하는 경우가 많다. Kilby 박사는 TI사에게 40년간의 시장석권의 영예를 안겨주었지만, Kilby 박사의 기술을 인정한 TI의 사장이나 Kilby 박사에 투자한 TI의 자금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연구자 스스로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 기술이 논문제출에서만 그친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하다고 판단된 기술은 특허를 출원함으로써 다음 절에 설명될 케르트 비니히의 경우처럼 기술의 중요성을 차츰 인정받게 되었을 때 예전에 출원한 특허가 빛을 발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잭 킬비(Jack St. Clair Kilby) -

반응형
사업자 정보 표시
그레마자 | 김용일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돌곶이로 18길 29, 1층 좌측(석관동, 그레마자공작소) | 사업자 등록번호 : 252-79-00271 | TEL : 010-7755-2287 | Mail : freesnut@naver.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 2019-서울성북-1435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Posted by Usmile~* :


이 블로그에서 오른쪽 마우스 클릭 및 드래그는 금지입니다!